SK가 사회적 가치를 말하는 이유

이탈리아 시인 ‘에리 데 루카(Erri De Luca)’ 작품에 ‘불 위에 있는 커피포트 하나로 방안을 따뜻하게 채울 수 있다 (A riempire una stanza basta una caffettiera sul fuoco)’란 구절이 있다. 이탈리아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 알베르토 몬디는 ‘욕실 속 작은 비누 하나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내 각오를 표현하기에 꽤 괜찮은 표현이다. 지난 1월, 다큐멘터리를 통해 내 생활이 방송된 후 사회적 기업을 만든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왜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나? ‘그저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는 절대로 내가 하고픈 말이 아니다. 쑥스럽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지역 사회를 돌보는 중소기업의 나라, 이탈리아

내가 참여하고 있는 ‘디엘레멘트’는 한국에서 말하는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는 이 같은 의미가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대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의무로 생각하며, 일반 기업과 사회적 기업 간 경계는 크게 없다. 이탈리아는 중소기업의 나라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는 로마와 밀라노 정도이고, 6천만 인구 대부분 작은 시골 동네를 기반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탈리아 기업은 동네기업이자 가족기업이며, 소비자와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품에 집중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듯하다. 이에 직원에게 ‘가족 같은 복지(진짜 가족이니까…)’를 제공하고, 일자리 창출, 지역 사회에 대한 후원 등을 당연시 한다.

이들 기업은 굳이 ‘사회적 기업’이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더라도 공공 부문이 미치지 못하는 각 지방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 내게 큰 동기를 부여해주는 이유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주는 기업의 힘

학창시절부터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았고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해 보니 국제기구와 같은 큰 조직은 장기적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즉각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나 공공부문도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정책을 통해 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느 나라나 비효율적이기 쉽고, 정권이 바뀜에 따라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업은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UN이 아프리카에 백신을 유통하기 어려웠을 때, 코카콜라가 회사 유통망을 이용하도록 허가해주어 아프리카 내 가장 외진 곳까지 필수 의약품을 전달했던 일은 좋은 사례다. 기업의 힘을 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한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의 철학자 니콜라스 버틀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한 기업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치열하지만 따뜻한 가슴이 있는 나라 한국, 그리고 디엘레멘트

내 한국행 스토리는 조금 알려져 있어 생략한다. 그 동안 이탈리아 대사관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주류회사, 자동차 회사 딜러를 거쳐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밤이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서울 야경을 보며 한국은 생동감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이 많으며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디엘레멘트를 함께 만든 사람들이 그렇다. 이들과의 인연은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따뜻한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MBA 과정에서 만난 김병철 피부과 전문의와 환경보호재단 출신 도혜진 이사는 소비자에게 올바른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으며,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는 디엘레멘트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정교화하고 있다. 회사이름처럼 우리는 ‘성분’에 대한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았으며, 1,000시간 이상 숙성해 천연 재료의 효능을 보존한다.
디엘레멘트는 제품의 본질뿐만 아니라 제품 생산부터 배송까지 모든 과정에 사회적 가치를 담고자 한다. 생산은 발달장애인 사원들과 함께 하는 ‘동구밭’과, 유통은 자활의지가 높은 홈리스와 함께하는 ‘두손컴퍼니’와 협력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리는 천천히 해 나가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업 운영은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고 경쟁적인 삶을 잠깐 멈추고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어, 수학 같은 도구적 학문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철학, 역사, 문학과 같은 삶의 가치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이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터로 나가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누구나 힘들다. 그러나 단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로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나 알베르토는 아침에 벌떡 일어나 일터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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