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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인공 지능, 로못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

올해 들어 유독 주변에서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이 언급된 이래 많은 분야에서 중요한 사회적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우리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혁명’ 이라는 말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기술의 본질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한양대학교 융합시스템학과 ’ 산학협력중점교수 한재권

기술의 변화, 그리고 後

기술의 변화는 무엇일까요? 사실 기술은 언제나 발전하며 변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꾸준히 기술을 발전시키는 존재입니다. 단지 기술의 변화가 사회를 너무 급격하게 바꾸는 경우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정도에 따라 인간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 왔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회가 생기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기술의 변화를 선점한 사람은 우월한 기술을 이용하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열강들이 지배했던 19세기와 20세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여 우월한 기술을 가진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를 식민지로 만들고 식민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독 국가라는 가치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18세기말에 쇄국정책을 하지 않고 서양의 발전된 기술을 빨리 받아 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당시에는 유교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 뒤처졌을 때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아야 할 고통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본’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지배

20세기 세계 대전의 잔인함을 경험한 인류는 다시는 그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UN을 중심으로 여러 안전장치를 만들었고 더 이상은 제국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아쉽게도 제국은 사라졌지만 기술의 선점을 통한 지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지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갈등은 새로운 사회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단 사람들 사이의 문제뿐 아니라 국가 간에도 그 문제는 확장되어 적용됩니다.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자본을 가져가는 형태는 새로운 국가 헤게모니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기술 발전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식민지배를 경험했던 우리 사회는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때의 부작용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유독 기술의 국가 경쟁 순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은 이런 국가간 헤게모니 싸움의 전위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 로봇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을 경우의 그 파급 효과가 상상이상이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적으로 의학적으로 그리고 시장 장악 측면에서 우월한 인공 지능 로봇 기술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차이는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차이입니다.

*헤게모니: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전체를 이끌거나 주동할 수 있는 권력

인공 지능 로봇, 유토피아적 상상

한 국가의 군대는 로봇이고 다른 국가의 군대는 인간이라면 그 전쟁은 하나 마나입니다.
손자병법에서도 최고의 승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간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은 우리가 상상해 왔던 사회의 모든 개념을 변화 시킬 것입니다.

인공지능 로봇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인류가 귀족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귀찮은 일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세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거나 원한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 삶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요?
중세시대의 귀족은 그러한 삶을 누렸습니다. 노예들이 필요한 일을 대신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현대에서 돈이 많은 자본가들이 귀족과 비슷한 삶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우리 사회에서 예전의 귀족과 똑같은 삶을 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 로봇이 예전의 노예의 역할을 해준다면 인간은 모두 귀족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인공 지능 로봇이 만들어 낼 유토피아적 상상입니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 주목!

하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요? 저 같이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성공 확률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로봇을 만들 주체는 주로 기업일 터인데 막대한 이익을 가져올 인공지능 로봇의 생산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또한 인공 지능 로봇이 만들어낼 막대한 생산력과 부가가치는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요?

이때 소외될 인간 노동력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비관론만 대두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노동력의 수가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서만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시스템이지 인공 지능 로봇으로 인해 노동력이 급격히 늘 수 있다는 가정을 도입하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올 시스템입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받아들일 제도이고 문화이며 윤리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해서 제도를 수정하고 문화를 바꾸며 새로운 윤리의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인공 지능 로봇 기술이 가져올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로봇 기술이라는 ‘손가락’이 아니라 제도, 문화, 윤리의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달’ 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EU의회에서 결의한 인공 지능 로봇에 ‘전자 인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한 것은 세상을 좋게 만들려는 노력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에게 ‘법인’의 개념을 만들어 권리를 부여하고 법인세를 부과하듯이 ‘전인’의 개념을 만들면 로봇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여러 장치들의 시작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많은 상상력과 보다 많은 새로운 개념의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인공 지능 로봇의 발전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새로운 경제체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는 어떤 형태일까요? 우리는 어떤 새로운 윤리의식을 갖추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문구에 현혹되기 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함께할 새로운 인문학적 사고에 주목해야 할 시점입니다.